자유게시판
2013년 여수 국가산업단지 내 대림산업 공장에서 사일로 탱크 폭발사고로 6명의 플랜트 건설 노동자가 사망하고, 11명이 부상을 당한 이른바 ‘대림 참사’가 발생했다. ‘대림 참사’의 근본적인 원인은 불법?다단계 하도급으로 인한 안전 관리 미흡이었다. 그런데 올해 6월 말 대림산업이 원도급사로 시공하고 있는 상주~영천 간 민자 고속도로 건설 공사 현장에서 배관공 2명이 업무상 재해로 사망했다. 이 사고 역시 불법?다단계 하도급이 초래한 산업재해로 밝혀졌다. 이처럼 불법?다단계 하도급으로 인한 피해는 같은 회사 내에서조차 시정되지 않고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건설업은 수주산업의 특성상 정확한 수주물량을 예측할 수 없고, 연간 공사 물량의 변동 폭이 크기 때문에 장비나 인력을 상시 고용한다는 것은 극히 어려우며 비효율적이다. 또한 공사를 일부 대형업체가 모두 다 담당하기에는 그 비용의 규모가 크고 위험부담이 크다. 그러므로 원도급사(공사를 처음 입찰한 기업) 와 하도급사(원도 기업에게 공사를 받아 시공하는 기업)가 그 비용과 위험을 능력에 맞게 분담하는 하도급 생산체계는 분업에 의한 생산의 효율성과 유연성을 높일 수 있다. 따라서 정상적이고 원활한 하도급 관계는 건설 산업에 필수적인 동반자 관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공사가 원도 기업에서 A 업체로, A 업체에서 B 업체로, B 업체에서 C 업체로 즉 하도급이 여러 단계를 거쳐 끊임없이 내려가는 구조를 ‘다단계 하도급’이라 칭하며 이러한 하도급 구조가 3단계 이상 내려갈 경우에는 ‘불법?다단계 하도급’이라 칭한다. 이는 하도급 구조의 생산의 효율성과 유연성 향상이라는 이점을 상실한 채 하청업체, 건설노동자, 사회 전반에 걸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게 된다.
그렇다면 하청업체가 받게 되는 피해는 무엇일까? 먼저 원청업체가 하도급업체를 선정 할 수 있는 권한 때문에 원청업체와 하도급업체 사이에는 자연스럽게 ‘갑.을 관계’가 형성 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이점을 악용해 원청업체가 하도급업체 에게 수주의 대가로 ‘뒷돈’, 공사 대금을 부풀려 하도급을 준 뒤 차익금을 돌려받는 ‘백마진’ 등을 요구하는 일이 건설업계에서 공공연하게 관행처럼 벌어지고 있다. 또한 도급단위가 내려갈 때마다 공사대금이 깎이는 다단계 하도급의 기본 생리 때문에 정상적으로 공사를 시공 할 수 없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한 예로 2007년 A건설사는 8억6천만원 짜리 공사를 3억 2천만원에 하도급을 받아 마진을 남기기 위하여 설계도는 아예 무시한 채, 기존 시설물을 고스란히 두고 메우기 공사를 했고, 300t 가량의 폐 콘크리트는 근처 땅에 그냥 묻었다고 한다.
이러한 불법?다단계 하도급으로 인한 하청업체의 경영상 어려움은 하청 건설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악화 시킬 수밖에 없다. 먼저 공사현장의 복잡한 계약관계로 인한 임금체불이 고질적인 문제로 꼽힌다. 다단계 하도급의 복잡한 연결고리 때문에 노동자들은 여러 단계의 하도급 업체를 거쳐 임금을 받게 되는데, 이 연결고리 중 한 군데 서라도 문제가 생길 경우에 노동자들은 임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국민의 당 최경환 의원이 지난 2016년 8월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건설업종 임금체불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1~15년간 임금체불 신고 근로자 수는 연평균 5만 8900여 명에 달하고 체불액수도 1600억~2400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임금 체불만이 문제가 아니다. 한 언론매체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5년간 30개 기업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수는 245명, 이 가운데 하청 노동자의 수는 212명으로 86.5%로 집계되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공사 대금이 깎인 하도급 업체가 공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현장 노동자들의 수를 줄이고, 줄어든 인원으로 작업량을 채우기 위하여 장시간 근로를 시키게 되어 자연스럽게 산재가 빈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둘째, 통계청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안전조치 없이 일한 경험이 있다’는 건설 분야 하청 근로자는 41.2% 나 되었다. 하청업체가 공사금액을 절감하기 위해 안전 관리비 마저도 지출하기를 꺼려한다는 뜻이다. 위와 같은 이유로 산재가 빈발할 수밖에 없고 발생하게 되면 단순한 부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근로자들의 죽음으로까지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불법?다단계 하도급의 병폐는 하청업체, 건설노동자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반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통계청의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건설업 생산의 GDP 대비 비중은 5%에 이르고 공식적으로 집계되는 건설 노동자의 수는 200만 명에 육박한다고 한다. 건설업이 우리나라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대하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불법?다단계 하도급을 철폐하지 않는다면 국가 기본 산업인 건설업이 흔들려 우리나라 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다. 또한 ‘한국건설산업연구원’(원장 최재덕)은 부실시공의 근원으로 건설현장의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꼽았는데, 이는 불법?다단계 하도급으로 인해 제2의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일어나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수년 전부터 이러한 불법?다단계 하도급의 병폐를 없애기 위해 불법?다단계 하도급을 합법화시키던 ‘시공참여자 제도 폐지’, 공사에 대한 원도급사의 시공 비율을 늘리는 ‘직접 시공제 확대’ 등 많은 노력들이 있었다. 하지만 모두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한 채 흐지부지되었다. 앞으로 보다 근본적인 대책과 법을 마련해 불법?다단계 하도급을 철폐한다면, 건설노동자와 하청업체도 웃을 수 있고 부실시공으로 인한 국민의 안전도 지킬 수 있는 사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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