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부터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시민참여단 모집이 시작되었다. 공론화위원회가 권고안을 제출하는 10월20일까지 탈원전 논쟁이 더욱 뜨겁게 달아오를 것이다. 고리1호기 영구폐쇄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탈원전을 선언하자 원자력계와 보수언론이 격렬하게 반발했다. 보수언론은 전기요금 폭등과 전력수급 불안, 재생가능에너지 한계를 집중해서 다뤘고, 원자력계와 탈원전 진영 간에 ‘팩트 체크’ 공방이 지속되었다.
에너지정책에 대한 뜨거운 논쟁은 꼭 필요하다. 그런데 안전 문제, 경제적 비용, 전기요금과 같은 주제에 대해 논쟁하기 전에 처음으로 돌아가 기본질문을 던져보는 것은 어떨까? 왜 정부가 이 시기에 탈원전과 에너지전환을 주요 국정과제로 내세웠나? 탈원전의 가치는 무엇이며, 탈원전을 하면 어떤 것들이 좋아지는가에 대한 질문 말이다. 탈원전을 시작하게 된 배경에는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로 바꿔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그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탈원전이 구현된 세상에 어떤 매력이 있는지를 상상해볼 수 있다.
탈원전 하면 좋은 점. 첫째, 보다 안전한 세상에서 살 수 있다. 스리마일, 체르노빌, 후쿠시마까지 세 번의 큰 원전사고가 발생했지만 제대로 책임지는 이들이 없었다. 방사능 오염은 누군가 책임질 수 있는 재앙이 아닌 것이다. 후쿠시마에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원전 난민이 여전히 7만9446명에 달한다. 고리원전 부지 30㎞ 반경 내에 382만명이나 살고 있다. 우리도 지난해 경주 5.8지진을 경험했기 때문에, 지진지대 위에 원전을 추가로 짓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 최근에도 한빛원전 4호기 콘크리트 방호벽에 ‘구멍’이 뚫렸고, 증기발생기에서 쇠망치가 발견된 것이 알려졌다. 원전운영 실태가 부실하고 불안하기 짝이 없다. 사고를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원전을 단 한 기라도 추가하지 않고, 탈원전을 앞당기는 일이다.
둘째, 원전이 줄어든 자리를 에너지효율개선과 재생가능에너지가 대신할 수 있다. 낡은 에너지시스템을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전력시스템은 분산형 지역기반형으로 바뀌게 된다. 생산지와 소비지가 실시간으로 전력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최적 설비용량을 갖추고, 통신기술로 전력예비율을 관리한다. 전력산업은 재생가능에너지, 송배전망 스마트화, 정보기술(IT), 저장장치가 연결되면서 부가가치를 창출하게 될 것이다. 재생가능에너지 비중도 2030년 20%까지 늘어날 계획이다. 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2015년에 벌써 세계 재생가능에너지 발전 설비용량이 석탄발전 설비용량을 넘어섰다. 세계적으로도 급격하게 늘어나는 재생가능에너지, 그 변화의 흐름에 우리도 함께하는 것이다. 더불어 밀양과 청도같이 초고압송전망으로 고통받는 지역주민들도 생기지 않게 된다.
셋째, 탈원전으로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일자리가 늘어난다. 재생가능에너지는 지역 곳곳에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낸다. 독일은 탈원전으로 3만개의 일자리가 줄어든 대신 37만개의 재생가능에너지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는 2030년까지 재생가능에너지 일자리가 2400만개가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무엇보다 핵발전소를 운영하고, 폐쇄하면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방사능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탈원전은 위험한 원전노동을 줄여 노동자의 건강을 지키는 일이다.
원자력계는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계속해야 한다는 이유로 전기요금 인상, 전력공급 불안, 일자리 감소, 경제성장 저해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폭염이 뜨거웠던 이번 여름에도 전기는 부족하지 않았다. 지금도 LNG발전소 가동률이 40%대로, 10기 중 6기가 멈춰 있다. 게다가 핵발전소 해체와 10만년을 보관해야 하는 폐기물 처분 비용을 반영하면, 핵발전은 값싼 에너지가 아니다. 원자력계는 공론화 과정에서 전력수급과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불안을 강조하고, 재생가능에너지는 안된다는 부정적인 메시지를 발신할 것이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낡은 에너지 시스템을 고수하자는 주장이다. 반면 탈원전은 긍정의 프레임이다.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로의 전환, 핵폐기물을 다음 세대까지 떠넘기지 않겠다는 책임의식, 재생가능에너지를 통한 일자리 창출까지.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는 탈원전 논의의 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의 미래를 선택하는 일이다. 따라서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과 지속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기 전에 먼저 떠올려야 할 질문이 있다. “우리는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