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깨달음에대한 종합 정리>라는 3편의 글을 쓰고 나서, 이 글들을 불교계 관련 사이트에도 올리면서 불교계 관련 기사와 자료들을 몇개 보게 되었습니다.
그 기사와 자료들을 보면서 지금의 한국 불교계가 어떤 큰 문제에 봉착했는지 알게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문제들에대한 <명확한 진단>과 <해법>을 제시해드리려 합니다.
우선 첫째로, 한국 불교계가 가진 가장 큰 문제점은 수행하는 승려들조차 <깨달음>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것입니다.
한국 대표 종단의 고위직 승려들과 불교 관련 관계자들조차 깨달음이 무엇인지 몰라서 <잘 이해하는 것>이라거나,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것>이라는 등등의 얼토당치도 않은 말들을 하며, 다른 수행승들과 일반인들을 잘못 인도하고 있습니다.
두번째로 가장 큰 문제점들 중 하나는 한국의 승려들이 평생을 화두를 잡고 간화선을 수행해도 깨달음을 얻는 사람이 거의 없거나 아예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들 때문에 <깨달음은 잘 이해하는 것>이라는 등등의 황당한 주장들이 나오는 것 같지만 아닌 것은 아닌 것입니다.깨달음은 머리로 이해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외에도 한국 불교계는 여러 문제점들이 있지만, 우선 한국 불교의 진정한 가치와 존망에 관계된 가장 중요한 두 문제점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그 해법을 제시하겠습니다.
이 두문제만 제대로 해결되어도 나머지 문제들은 그에 따라서 자동으로 함께 풀려 나가리라 생각합니다.
먼저, 한국 불교계의 가장 큰 문제점인 <승려들조차 <깨달음>이 무엇인지 제대로 모른다>는 점에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한국 불교가 이런 말법 상황까지 오게 된 원인들이 여럿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으로는
첫째, 한국 불교계에서 더이상 깨달은 사람들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그것도 한두명이 아닌 여러명이 동시에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
둘째, 이전의 깨달았던 사람들은 설법을 해도 도대체 깨달음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지도 않고, 자신의 깨달음에 취해서 수행승들과 일반인들은 알아듣지도 못하는 가르침이나, 다른 이야기들만 하다가 가니 깨달음이 무엇인지 도무지 짐작할 수도 없다는 점
셋째, 불교 경전을 뒤져 봐도 지나치게 산만하게 군데군데 조금씩만 언급되어 있거나 알아듣기 힘들게 언급되어 있을 뿐, 구체적이고 알아듣기 쉽게 깨달음이 무엇인지 속 시원하게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점
넷째, 이전의 수행승들과는 달리 현재의 수행승들은 엄청난 물질 문명과 물질주의 시대에 살고 있어서,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물질주의의 커다란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 즉, 눈에 보이고, 머리로 헤아릴 수 있고, 머리로 통제할 수 있는 것만을 믿고 신뢰한다는 점
등이 현재의 한국 불교계가 직면한 <<깨달음>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가장 큰 병이 든 주요 원인들이라 생각합니다.
그 해법을 알려드립니다.
첫째, <깨달음>이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거나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것이 아닙니다.
내가 쓴 <깨달음에대한 종합 정리 - 1.깨달음의 정의와 속성>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깨달음이란 '<나>라고 믿고 있던 자아(마음,에고,거짓 나)가 어떤 계기(명상,수행 등)로 완전히 붕괴되서 죽음을 맞이한 상태(내가 완전히 사라진 상태)(-육체의 죽음이 아님).그 결과로 완전히 오직 <이것>(신,무(無),공(空),불성,신성,진아,참나)에 떨어지고,<이것>만이 존재하는 상태를 <깨달음>이라 합니다.' 이것이 수많은 깨달은 스승들의 가르침들에서 공통적으로 가르쳐진 부분입니다.
석가모니는 금강경에서 이것을 가리켜 <나 없는 진리>라고 표현했습니다.
즉, <나 없는 진리>가 <깨달음>입니다.
즉, 머리로 잘 이해하는 <나>,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나>가 완전히 붕괴되고 사라져서 불성에 떨어져서 불성과 하나가 되고, 오직 불성만이 존재할 때를 <깨달음>이라 합니다.
이것이 <깨달음>의 정의입니다.
이런 내용들이 어디 나오냐구요?
현대의 깨달은 스승들의 가르침에 나옵니다. (불교계가 아닌)
한국 불교계는 중구남방으로 여러 가르침들이 산만하게 흩어져 있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이라 믿고 있는 불경이나, 역대 조사들,불교계의 깨달은 존재들의 가르침 안에서만 어떻게든 발버둥 칠게 아니라, 여러분들이 외도(外道)라고 무시하는 현대의 깨달은 스승들의 가르침들에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깨달음에 외도가 어디있습니까? 석가모니의 깨달음이 다르고 현대의 깨달은 스승들의 깨달음이 다를까요? 만약에 누군가 그렇게 말한다면 한국 불교계는 왜 <깨달음>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모르고 있습니까?
한국 불교계는 불경이나, 역대 조사들이나, 이전의 불교계의 깨달은 존재들로부터 정확히 배우지 못한 <깨달음>에대한 구체적이고 명확한 안내를 현대의 깨달은 스승들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현재로서는 그 방법만이 <깨달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한국 불교계가 걸린 말법의 커다란 중병에서 가장 빨리 벗어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추천해드리고 싶은 현대의 깨달은 스승들과 그 가르침으로는 <라마나 마하리쉬>, <오쇼 라즈니쉬>, <무묘앙 에오> 세 존재들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그 중에서도 라마나 마하리쉬의 가르침을 보면 명료하면서도 알기 쉽고 빠르고 구체적으로 <깨달음>이 어떤 것인지 알수 있습니다.
현재도 출간되고 있는 <있는 그대로>라는 책을 우선 추천드리며, 그 외에도 그의 다른 가르침들도 보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오쇼 라즈니쉬 또한 명쾌하고 알기 쉽고 시적인 표현으로 많은 가르침들을 주고 있지만, 번역되서 나온 책들이 너무 많아서 그중에서 원하는 것을 골라 보시기 바랍니다.단, 오쇼의 가르침들은 핵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헤맬수도 있습니다.그가 그의 가르침에서 삶을 긍정하는 듯한 그럴듯한 이야기들을 한다고 해도, 그의 가르침은 마지막에 결국은 무상(無常)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무묘앙 에오는 가장 최근에 가르침을 준 존재로, 한국에 번역되서 나온 책 10권은 이미 절판되었지만 대형 인터넷 서점 중고서적 코너에서 일부는 구할 수 있습니다.아주 신랄하면서도 우주와 인간과 깨달음에대한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직시할 수 있게 가르쳐줄 것입니다.
이 세존재들의 핵심 가르침만 이해해도 <깨달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중병>에서 한국 불교계는 벗어날 수 있습니다.
둘째, 한국 불교의 승려들이 평생을 화두를 잡고 간화선을 수행해도 깨달음을 얻는 사람이 거의 없거나 아예 없다는 문제에대해서 그 원인과 해법을 제시하겠습니다.
평생을 수행해도 깨달음을 얻는 수행승이 나오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위에서 언급되었지만
첫째,<깨달음>이 무엇인지도 모른다는 점
둘째,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는 과정과 핵심에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는 점
셋째, 설령 위 두가지를 알지 못한다해도 예전 수행승들이 깨달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던 깨달은 스승에대한 큰 신심(信心)과 분발심이 현재의 수행승들에게는 부족하거나 거의 없다는 점 (깨달은 스승이 거의 없다는 점도 관련)
넷째,화두를 붙잡고 수행을 하는 <간화선>이라는 방편이 더이상 현재의 수행승들에게 맞지 않는다는 점
등이 현재의 수행승들에게서 깨달은 존재가 나오지 않는 가장 큰 원인들이라 생각합니다.
이 문제들에대한 해법을 제시하겠습니다.
첫째, <깨달음>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문제에대한 해법은 위에서 언급했고,
둘째,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는 과정과 핵심에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는 점>에대해 말하겠습니다.
화두를 붙잡고 들어가는 간화선이든, 비파싸나 명상법이든, 아니면 다른 명상법이나 수행법이든, 깨달음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본 핵심 원리는 동일합니다.
내가 쓴 <깨달음에대한 종합 정리 - 2.명상에대한 이해>의 글에서 이미 설명했지만, 어떤 명상법이나 수행법이든 결국 그것을 통해서 마지막에 도달하게 되는 곳은 <더이상 <마음>이 어디로도 움직이지 않는 상태>,<완전한 휴식의 상태>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랬을 때, 수행자는 갑자기 <자아(나,마음,에고)가 사라지는 상태>에 떨어지게 됩니다. 수많은 생을 윤회하며 축적해온 <나(자아,마음,에고,거짓 나)>가 죽음을 맞이하는 상태(무(無)의 심연)가 갑자기 찾아오게 됩니다.
이것에 모든 것을 맡기고 떨어져 죽었을 때, <내>가 완전히 사라졌을 때, 그다음에 자기 자신의 영원한 본성 자리(불성,신성,진아,참나,신, ..)인 깨달음에 들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정말로 자기 자신이 죽을 각오,사라질 각오가 되있지 않다면 깨달음에 들지 못할 것입니다.
간화선 수행자가 깨달음에 드는 과정을 예를 들면, 수행자는 자나 깨나, 말할 때나, 일상의 모든 생활에서 어떤 화두를 붙잡고 놓지 않습니다. 그렇게 오매불망 어떤 화두를 붙잡고 수행하다 보면, 언젠가 어느 순간에 화두마저 사라지고 더이상 마음이 어디로도 움직이지 않는 상태,마음이 사라지는 상태가 찾아올겁니다.그리고 자아의 죽음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그리고 그것을 통과했을 때 깨달음에 들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원리를 알았다 해도 요즘도 이렇게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옛날 수행자들이야 이런 이치를 몰라도 깨달은 스승에대한 존경심과 신심(信心),분발심이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깨달음을 얻는 사람들이 가끔 있었지만, 요즘 수행자들 중에 이렇게 목숨 걸고 화두를 붙잡고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몇명이나 있을까요?
석가모니가 전해준 비파싸나 명상법을 통해서 깨달음에 드는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수행자는 자나 깨나 항상 놓치지 않고 마음(사념)이나 행위,호흡 등을 주시합니다.그렇게 열심히 수행하다 보면 수행자는 언젠가 마음이 더이상 움직이지 않는 상태,완전한 휴식의 상태에 도달하게 됩니다.그리고 자아의 죽음을 만나게 될 겁니다.그것을 통과했을 때 깨달음에 들게 될 것입니다.
깨달음에 드는 이런 과정에대한 이해가 없이 수행이나 명상을 하는 것 보다는, 이것을 이해하고 수행이나 명상을 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될 것입니다.
셋째, 요즘 수행자들이 (수행에대한) 분발심이 부족하거나 거의 없다는 점은, 수행자 개인이 출가한 동기와 자질과 관련된 문제가 우선 있습니다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1.<깨달음>과 <깨달음을 얻는 과정>에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는 점 2.깨달은 스승이 현재 거의 없다는 점 3.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방편>이 현재의 수행자들에게 더이상 맞지 않는다는 점 등과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불교는 먼저 깨달음이 무엇인지부터 명확히 인지하고,현재의 수행승들에게 더이상 맞지 않는 옛 방편 대신에 아래에 내가 제시하는 새 방편을 사용해보시기를 권고 드립니다. 그리고나서 출가하는 승려를 뽑는 기준을 엄격히 해서 깨달음에대한 이해가 있는지, 진정으로 그것을 원하고 있는지,분발심이 있는지,깨달음을 얻기 위해 목숨을 내놓을 각오가 되어 있는지부터 가려내서 출가를 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한국 불교는 승려로서의 자질도 없고 자세도 되어있지도 않은 자들만 넘쳐날 것입니다.
승려는 직업도 아니고 돈벌이 수단도 아닙니다. 목숨 내놓고 수행하고 깨달아서, 후배 수행승들과 사람들을 깨우고 인도하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넷째, <화두를 붙잡고 수행을 하는 <간화선>이라는 방편이 더이상 현재의 수행승들에게 맞지 않는다는 점>에대해 그 해법을 제시하겠습니다.
불교계 관련 어느 자료를 보니 간화선을 수행해도 깨달은 사람이 안나오니까 불교계 일부에서 간화선 대신에 석가모니가 가르쳤던 비파싸나 명상법으로 수행 방식을 바꾸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만, 그렇게 하면 깨달은 사람이 더 나올까요?
나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간화선이든 비파싸나이든 깨달음에 도달할 때까지 똑같이 오매불망 자나 깨나 항상 화두를 붙잡고 늘어지던가,마음이나 행위,호흡 등을 지켜보아야 하는데, 앞에서도 말했지만 요즘 그렇게 목숨 내놓고 수행하는 분발심을 가진 수행승들이 얼마나 될까요?
깨달은 사람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바꿔말하면 그렇게 목숨 내놓고 수행하는 사람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것은 수행자의 분발심 문제도 있지만, 평생을 붙잡고 수행해도 깨달은 사람이 나오지 않는 <방편>의 문제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화두를 붙잡고, 언제 도달할지도 모르는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오매불망 자나 깨나 무엇을 하든 오직 화두에 돌진할 수 있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요?
요즘 사람들은 납득하지 못하면 진심으로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그리고, 요즘은 온갖 외부의 자극과 여러 주의분산 거리들이 넘쳐나서 수행승들을 항상 외면으로 잡아당기고 있는 세상인데, 옛날처럼 그런 방편이 계속 통할까요?
나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불교계 관련 어느 기사 보니까 어떤 승려가 간화선 화두 수행이 수행법의 최신 버전이라고 자랑하던데, 내가 볼 때는 최신 버전이 아니라, 요즘 사람들에게 더이상 통하기 어려운 오래된 구형 버전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간화선 화두 수행이나,비파싸나,기타 다른 명상법이나 수행법이 마음에 들고 자신에게 잘 맞는다면 그 방편으로 수행해도 됩니다.하지만 그것이 맞지 않는다면 아래에 내가 제시하는 최고로 간단한 방법을 사용해보시기 바랍니다.아마도 이보다 더 간단한 방법은 더이상 없을겁니다.
여기서 내가 제안하는 새로운 방법은 더이상 어떤 <방편>을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명상법도 아니고 수행법도 아닙니다.모든 군더더기 <방편>이나 <명상법>이나 <수행법> 따위를 모조리 제거한 것이며, 어떤 명상법이나 수행법을 사용하든 결국 깨달음 직전에 마지막에 도달하게 되는 바로 그 공통 핵심 자리에 직접 떨어지는 방법입니다.
<깨달음에대한 종합 정리 - 2.명상에대한 이해>의 글에서 이미 언급했지만, 그것은 <당신의 마음이 더이상 어디로도 움직이지 않는, 완전한 휴식의 상태에 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명상이나 수행법이 아닙니다.단지 당신이 정말로 완전한 휴식의 상태에 드는 것뿐입니다. 당신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습니다.이것은 당신이 완전한 휴식 상태에 드는 것입니다.
당신은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그저 가장 편한 자세로 눕거나,앉거나, 좌선의 자세를 취하거나 아무 상관 없습니다.당신이 해야 할 유일한 일은 말 그대로 <완전한 휴식의 상태에 드는 것> 뿐입니다.
당신이 정말로 잘 쉬어 내려간다면 당신은 갑자기 <내가 사라지는>지점, <자아의 죽음>에 마주치게 될 것입니다.
수많은 생을 윤회하면서 축적해온 <나(자아,마음,에고,거짓 나)>가 죽음을 맞게 되는 순간이 갑자기 찾아 올겁니다.이때 공포에 떨며 거기서 도망치지 말고 그곳에서 떨어져 죽으라고 오쇼 라즈니쉬와 무묘앙 에오 등은 가르쳤습니다. 선(禪)의 조사들도 그 자리에 목숨을 내던지라고 가르치지 않았습니까? 당신의 자아는 두려움에 떨며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치고 거기서 반사적으로 즉시 도망치겠지만, 당신이 진정으로 깨달음을 원한다면 밑도 끝도 없는 그 <무(無)의 심연> <나 없는 자리>로 떨어져 죽어야 깨달음에 들 것입니다.
이 자리는 석가모니가 깨달음 직전에 든 자리일 것입니다.수년간 모든 고행을 다 해보고 모든 수행을 다 해봤지만 깨달음을 얻지 못한 석가모니는 완전히 절망했고 더이상 할 것이 남아있지 않았습니다.죽는 길 밖에 남지 않았을 것입니다.석가모니는 완전히 체념했고 더이상 생각할 것도 남아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마지막으로 그는 자리에 앉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선정에 들었을 것입니다.그는 완전히 체념했고 더이상 마음이 어디로도 움직이지 않았고 사념도 사라지고 완전한 휴식 상태에 들었을 것입니다.그리고나서 새벽별과 함께 그는 깨달음을 얻었고 <그>는 사라졌습니다.
내가 알려드리는 이 방법은 석가모니가 깨달음 직전에 마지막으로 도달한 자리로 바로 들어가는 방법입니다.또한 모든 명상법이나 수행법에서 결국 마지막으로 도달하게 되는 똑같은 자리입니다.석가모니는 모든 것에대한 체념을 통해서 들어갔지만, 우리는 완전한 휴식의 상태를 통해서 내려가서 그 자리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깨달음에 도달하게 되었을 때, 그 존재는 더이상 <나>도 없고, <사람>도 아니고, <중생>도 아니고,<목숨 달린 존재>도 이니라는 것을 석가모니는 금강경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존재는 신(불성,신성,진아,참나,본래면목,무(無),공(空), ...)이 된 것이며, 해탈하게 되면 더이상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으며, 윤회 환생하지 않는 우주를 초월한 <이것>이 된 것입니다.
한국 불교의 진정한 가치는 모든 한국 사람들에게,더 나아가서 지구 인류에게 <깨달음>이 무엇인지 명확히 가르쳐 줄 수 있어야 합니다.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누구나 다 <깨달음>이 무엇인지 기본적으로 다 알수 있도록 가르쳐주어야 합니다.진정한 자신은 육체도 아니고, 마음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고, 죽고 태어나는 중생도 아니고,생물체도 아니고, 신(불성,신성,진아,참나,본래면목,무,공,도,진리,하느님,하나님,한울님,한얼님,브라흐만,그리스도 의식, ...)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그들이 당장은 자신의 본래면목과 하나가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언젠가,어느 생에선가 법의 씨앗이 피어나서 깨달음을 얻을때까지 한국 불교는 그들을 가르치고 인도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이것이 한국 불교가 지녀야 하는 진정한 가치입니다.
그러려면 한국 불교계 자체에서 많은 <깨달은 존재>들을 배출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더 욕심을 부리자면 일반인들에서도 많은 깨달은 존재들을 배출해낼 수 있다면 한국 불교는 최상의 가치로 빛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말법 상황에 다다른 한국 불교계에 드리는 충심 어린 조언입니다.
한국 불교계가 최상의 상태로 완전히 개벽하게 되기를 바랍니다.한국 불교계의 앞날에 석가모니를 비롯한 모든 깨달은 존재들의 빛이 인도해주시기를 기원합니다.
- vision 드림 -
(*이 글의 저작권은 vision에게 있습니다.전에 보니 이 vision의 글을 자기 까페나 다른 곳에 퍼가서 저작권자도 표시하지 않고 마치 자신이 쓴 글인것처럼 올려놓고 행세하는 자들을 여럿 보았습니다.그것도 수행을 한다는 사람이 말입니다.이 글은 vision이란 사람이 이번 생 동안 이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한 많은 노력과 정성이 들어간 글이니 도용하지 말고 정당하게 저작권자를 표시하고 퍼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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